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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생활/시드니

호주 시드니 여행 - 냉면, 치킨,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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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이다. 다음날이면 타즈마니아로 돌아가는 날이다. 구자와 지은은 아침에 출근했고, 우리는 마치 집주인인양 배웅을 했다. 휘는 다시 잠을 좀 더 잤고, 나는 영화를 봤다. 신의 한 수를 봤는데, 가볍게 보기에 알맞은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재미없었던 적은 거의 없다. 정확히는 한 번만 있었던 것 같다. 나름 많은 영화를 봤다고 자부하지만, 영화가 끝나기 전에 나온 것은 '비스트보이즈'가 유일무이하다.

 

오늘의 첫 목표는 '냉면'이었다. 타즈마니아에는 이렇다 할 한인마트도 없기 때문에, 하나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물건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냉면을 한 번도 먹지 못했다. 시드니에 가면 반드시 먹고자 했던 것들은 '꿔바로우, 족발, 냉면, 국밥'이다. 첫날 꿔바로우와 족발을 먹었으니까 우리는 냉면을 먹기 위해 향했다. 냉면을 파는 집은 꽤 많다. 하지만 우리의 입맛이 이끄는 곳은 라이드에 있는 '마루'이다. 웨스트라이드 역에서 내려 20분 정도를 걸었다. 20분 내내 오르막길이라는 것은 냉면을 더 맛있게 먹을 조건에 충분했다. 마루는 월남쌈 전문점이라고 쓰여있지만, 우리는 월남쌈보다 다른 것들을 선호한다. 이곳의 냉면은 특별한 향을 품고 있다. 민트향 같기도 한 것이 자극적인 듯하면서도 특별한 맛을 불러온다.

 

마루 냉면

 

나는 물냉면, 휘는 비빔냉면을 시켰다. 국물까지 싹 먹었다. 한인식당의 좋은 점은 반찬도 맛있다는 것이다. 역시 한국사람은 한식이지 라고 생각하면서 반찬 하나하나를 음미했다. 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직접 하나하나 만들어 먹는 처지가 되다보니 반찬의 귀함을 느낀다. 옆에 있는 Campus 빈을 사용하는 카페에서 라떼 한잔을 시켰다. Campus는 휘의 최애 커피빈으로, 신맛이 다소 강하며 밀크커피(라떼)에 잘 어울린다. 바리스타와 지내다 보니 커피가 얼마나 민감한지 듣곤 한다. 거품의 차이, 온도, 시간의 영향으로 맛은 달라진다. 같은 빈과 머신을 사용해도 맛은 그날그날 달라지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나는 커피를 많이 마셨다. 주로 아메리카노를 마셨었고, 당시엔 카페를 공간의 개념으로 즐겼었다. 예를 들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는 곳으로 말이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아메리카노 대신 플랫화이트를 주로 마시게 되었고, 공간보다는 커피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휘의 라떼아트

 

냉면을 먹고 시티에 갔다. 얼마전 누나가 딸을 낳았다. 첫 조카이자, 엄마 아버지에게 첫 손주이다. 외국에 나와 살다 보니 아직 보지도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고, 시드니에 온 김에 건강식품을 보내기로 했다. 처갓집, 우리 집에 각각 택배를 보냈다. 호주에는 Chemist Warehouse라는 큰 매장이 있다. 이곳에서 영양제를 구매하는 사람은 늘 가득하다. 연말이기도 하고, 우리처럼 고국에 있는 가족에 선물을 보내는 사람도 상당수 일 듯했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생각하며 건강식품을 고르고, 한인마트에 가서 택배를 보냈다. 선물을 한다는 것은 받는 사람을 위함도 있지만, 그보다 주는 사람의 마음을 더 좋게 하는 것 같다. 적어도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오늘은 케이트, 태희형을 만나기로 했다. 타즈마니아에 가기 전에도 그랬지만, 저녁을 먹고 포켓볼을 친다거나 술을 한잔 하곤 했다. 케이트는 갈 곳을 잘 정해준다. 휘랑 나는 누군가가 그렇게 해주는 것이 편하다. 케이트는 일을 마치고 왔다. 5시 반쯤 시티에서 만나, 'BASAX'이라는 곳에 갔다. 아직 시간이 조금 일렀는지,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분위기는 식욕을 돋우는 조명과 함께 깨끗하게 정돈된 느낌을 줬다. 라볶이와 바삭 치킨을 시켰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우리의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외국인 입맛에 맞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쁘지 않았다. 치킨은 이름 그대로 바삭했다. 오븐에 구워져 나오는 듯했다.

 

BASAX 치킨

 

태희형은 시드니에서 스시집을 한다. 어릴 적부터 외국에서 살아왔다. 약간 뻔뻔한 개그를 하는 스타일인데, 케이트랑 웃음코드가 잘 맞는 모양이다. 분명한 것은 상대에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다. 몇 번인가 만났지만, 항상 존대를 한다. 지금은 같이 일하던 직원이 그만둬서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는데, 새벽 5시에 출근을 한다고 한다. 케이트와 태희형을 보면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나도 휘와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그 둘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치킨을 먹고 아쉬워서 닭갈비를 시켰다. 닭갈비는 배를 채우는 느낌이 강했다. 식당을 나올 때쯤 가게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외국인들의 입맛을 제대로 저격한 모양이었다. 식당을 나온 후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공사가 끝났다는 차이나타운과 달링하버를 잇는 구간으로 걸었다.

 

요거트 아이스크림

 

차이나타운 - 달링하버

 

차이나타운은 실로 대단하다. 항상 사람들로 붐비고, 길에는 노점상들이 즐비하다. 양길로는 대형 레스토랑들이 항상 호객행위를 한다. 서양인, 동양인 할 것 없이 구경하고 먹고 즐긴다. 특유의 향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코로 느껴지는 향뿐이 아니라, 그 특유의 향 말이다. 달링하버에서부터 차이나타운을 같이 쭉 걸었다. 시드니에 왔다고 서둘러 가게를 정리하고 나온 태희형과 늘 그렇듯 휘에게 너무나 좋은 친구인 케이트와 인사를 했다. 그리고 기분 좋게 헤어졌다.

 

우리는 구자, 지은이 일 끝날 즈음에 맞춰 혼스비로 갔다. 본인들은 아직 저녁을 못 먹었다면서 먹을 것을 사 오겠다고 했다. 감자탕, 돈가스, 김밥, 순대 등이 상을 가득 채웠다. 배가 안 고팠는데도 먹다 보니 들어갔다. 감자탕은 일품이었다. 훕훕 소리를 내며 빨아들일 때 고기 덩어리가 입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그 느낌은 일품이었다. 국물은 시원하고 진했다. 너무 맵지도 않고, 달지도 않은 그 국물은 뼈다귀 해장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구자네 야식

 

잊고 있었지만 이 야식을 먹는 날은 마지막 날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이 오고, 구자와 지은이 출근하고 나면 나와 휘는 비행기를 타고 타즈마니아로 돌아와야 했다. 늘 시작은 끝을 데리고 온다. 마지막 날 밤은 늘 그렇듯 아쉽다. 구자랑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서, 담배를 한대 피우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어릴 적부터 봐온 친구와 함께 시드니라는 곳에서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고 말이다. 

 

막상 가지고 있을 때는 모르던 것들이 많다. 시드니에 살 때는 맛있는 것을 먹는 것에 대한, 집에서 해 먹는 것에 대한, 한국에 대한, 호주에 대한 생각들은 딱히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순간순간을 살았던 것 같다. 지금 타즈마니아에서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해야 할까 많다고 해야 할까. 집에서 휘와 요리를 해 먹고, 한국의 가족, 호주의 삶, 그리고 시드니에서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먹던 모든 순간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자기 전에 우리는 UNO를 했다. 방에 옹기종기 모여서 웃으며 소리 지르며 서로를 방해하며 게임을 했다. 즐거움이 온 방 안에 가득했다. 지은이는 게임을 무척 좋아한다. 한번 시작하면 아무래도 끝장을 보고자 하는 것 같다. 아마 휘가 그만하고 자자고 하지 않았다면 3시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그때가 2시가 다 돼 갈 때였다.

 

앞이야기: https://adjstory.tistory.com/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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